신비한TV 서프라이즈 754회 2017년 2월 26일 방영

Ⅲ. 흑백전쟁

 1936년 독일, 히틀러의 개회선언과 성화 봉송으로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의 막이 오른다. 그런데 당시 올림픽에 참가한 수많은 선수 중 히틀러에게 유독 눈엣가시 같은 선수가 있었는데… 그는 누구?

바로 제시오웬스(Jesse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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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육상최다관왕인 제시 오언스와 나치 국가대표 선수인 루츠 롱의사진.

 

멀리뛰기 결승전에서 오웬스의 라이벌이었던 루츠 롱은 멀리뛰기의 비결을 오웬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결국 오웬스가 멀리뛰기도 우승해 4관왕이 됐다.

 

 

 사람들은 1936년 독일에서 펼쳐진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단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미국 육상 5관왕이었던 제시 오웬스와 악수하기를 거부했다는 얘기를 여전히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달랐다. 히틀러는 1936년 8월 2일 메인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육상종목 첫째날 경기를 직접 관람했고 이 날 1896년 올림픽 이후 최초의 금메달을 획득한 독일 육상선수 한스볼케를 로열박스로 초대해 격려하기도했다. 그 날 히틀러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계속 그의 좌석으로 초대해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다음 날인 8월3일 IOC위원장 바이유라뚜르 백작(Baillet-Latour)은 이른 아침 히틀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일개국가의 원수가 선수들을 자신의 좌석에 초대하여 축하해주는 것은 올림픽 의정에 위배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와 같은 일을 삼가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에 히틀러는 자신의 무지를 사과하며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따라서 바로 이 날 첫번째 금메달을 획득한 제시 오웬스를 포함하여 로열박스에 초대되어 독일 총통과 악수를 나눈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히틀러가 의도적으로 흑인 오웬스를 무시했다는 얘기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한편 오웬스는 1970년에 출간된 자서전 The Jesse Owens Story 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내가 VIP석 아래를 지날 때 나를 본 총통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 역시 손을 흔들어 그에게 화답했다. 독일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총통을 그런 식으로 모략함으로서 일부 언론인들은 그들의 고약한 심성을 드러냈다." 우습게도 미국 언론이 퍼뜨렸던 낭설과 같이 행동했던 인물은 사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었다. 당시 재선 선거전을 치르고 있었던 루스벨트는 남부지역 표를 의식해 올림픽 5관왕으로 금의환향한 오웬스를 백악관에서 맞기를 거부했다.

 후일 오웬스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그를 냉대한 사람은 히틀러가 아니라 루즈벨트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오웬스 에피소드는 제3제국의 공개적인 반유태주의 때문에 생겨난 수 많은 흑색선전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서술하면 이렇다.

첫날 육상경기가 벌어진 1936년 8월 2일 히틀러는 육상 경기장을 찾았다가 일찍 자리를 떳다.빡빡한 스케쥴 때문이었다. 당시 높이뛰기에서 정상에 오른 미국의 흑인 코넬리우스 존스는 늦게 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히틀러의 축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자 뉴욕 타임스는 '히틀러가 흑인 금메달리스트들을 무시했다(Hitler Ignores Negro Medalists)고 전했다.

히틀러의 나치즘을 비판하던 외신 등이 이 사실을 과장, 왜곡했던 것이었다.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웬스 (Jesse Owens)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무려 네 개나 땄다.

 멀리뛰기 종목에서조차 오웬스는 루츠 롱 (Lutz Long)을 이겼다.

또한 히틀러는 소문에 의하면 황인종을 열등한 민족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손기정 선수와 악수를 했다.

베를린올림픽에서 나치와 손기정선수모습 

만약 나치가 인종차별을 주장했다면, 이런 루츠 롱의 행동은 사형감이었을 것이다. 또한 손기정 선수와의 악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츠 롱이 이런 언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치는 인종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분명한 건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 슬라브 민족을 싫어했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제시오웬스를 협찬한 회사가 아디다스였고 아디다스의 스파이크를 신은 오웬스가 결국 4관왕을 획득함에 따라 아디다스 또한 크게 흥행하였다고한다.

당시 제시오웬스가 신었던 아디다스신발. 초기의 아디다스는 삼선이 아니라 선이 두개 였다고 합니다.

 

베를린올림픽 4관왕 흑인영웅 제시오웬스, 그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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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새빌로의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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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TV 서프라이즈 2017년 2월 26일

악몽과 영화감독의 저주.


 1966년 이탈리아, 새로운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던 한 영화감독.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구상 중이던 영화 제작을 포기한다! 뜻밖의 이유로 영화 제작을 포기해야 했던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 그 이유는?

 

그는 바로 1920년 1월 20일 이탈리아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영 화 '길' '8과 2분의1'과 같은 영화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 페레디코 펠리니는

고국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영화를 구상중이던 1966년 어느날 악몽을 꾼다.

그의 흥행영화 포스터

 

 

꿈풀이를 해 준 마법사(역술가)로부터  "지금 구상 중인 작품을 영화화하면 죽는다"

는 말을듣게 되고...

마침 구상 중이던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품내용은 '자기가 죽은 줄 모르는 한 남자의 여행 모험담'이었다.  영화 식스센스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는 꿈풀이 때문에 이 작품의 영화화를 포기하게 되었지만 수십년간 이 작품을 영화화시키길  갈망했다.

 

결국 30년만에 그는 '묘안'을 짜냈는데 바로 영화가 아닌 만화로 작품을 만드는것.

 

이탈리아의 유명한 만화가인 밀로 마나라를 찾아가서 초현실적이며 탐미적인 판타지 만화 '페르네나 불리는 G.마스토르나의 여행(il viaggio di g. mastorna detto fernet)'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그 마법사의 예언이 적중했던 것일가.. 천 연재만화가 출판되고나서 6개월뒤 그는 73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그의 저주받은 만화 il viaggio di g. mastorna detto fernet

 

이상 새빌로의마법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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